외환 딜러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1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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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워크넷, 통계청 / 도표=강륜주 기자]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찾아 집중 취재 재조명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신종 재테크의 진실을 추적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일확천금의 찬스와 비밀의 방 - 코로나19 시대 신종 재테크의 진실'을 부제로 코로나19 시대에 떠오르는 신개념 재테크의 실체를 추적했다.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경력 20년 외환딜러와 함께 FX마진거래를 시도했다.

외환딜러는 매수를 시도하며 "분 단위로 차트를 봤을 때 급격하게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급락했을 때는 일정한 바운드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실격 처리에 두 번째 도전을 시도한 딜러는 보조지표를 동원하며 "차트 흐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예측을 돕는다"라고 외환 딜러 설명했다. 매수를 선택했으나, 또 실격했다.

15회의 투자 끝에 최종 결과는 실현 8, 실격 7. 이에 딜러는 "월 봉을 보면서 긴 흐름, 추세를 따라가는 게 보통 트레이더의 외환 딜러 흐름이다. 이건 상승이나 하락폭과는 관계없이 방향만 맞히자는 거다. 트레이딩이나 외환 방식과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딜러는 "달러를 빼고 파운드와 호주 달러를 붙여서 하는 통화 쌍은 나도 생소하고 낯설었다"라며 업체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업체 관계자는 "최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고. 실현율도 높다"라며 '통합 VIP 리딩방' 채팅에 딜러를 초대했다.

이에 딜러는 업체 상담사의 리딩에 따랐다. 그러나 한 시간 예정이던 리딩은 삼십 분 만에 중단됐고, 관계자는 연락 두절됐다.

딜러는 "환율이라는 게 짧은 시간에 흐름을 파악하거나 분 단위로 쪼개 방향을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리딩을 따라 일반 투자자들이 돈을 걸고 베팅을 한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해당 거래를 야바위에 비유하며 "그건 워런 버핏도 못 맞춘다"라고 꼬집었다. 실험에 참여한 딜러도 "홀짝 게임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였다.

유사 업체에서 아르바이트 근무했다는 제보자 이도현 씨(가명)는 "바람잡이, 홍보. 스크린샷 수익 인증이라고 하면서 올리는 거다. 2주 동안 (리딩도) 두 번 해봤다"라며 리딩방 내 실제 회원은 "30~40명이다. 100명에서 120명은 10만 원 주면 채워주는 유령 아이디다"라고 말했다.외환 딜러

모 도박업자도 FX마진거래를 두고 "배당률 보면 토토와 비슷하다.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건 인지를 할 수 있게 (보도) 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도박장 운영자는 "코로나 때문에 토토도 없지 않나. 이름만 바꿨지 유사한 게임들이 많다"라며 "'베팅하는 그 부분만 만들어 달라' 이래서 제작 의뢰를 해서 만들어 온 거다. 프로그래머한테 의뢰를 해서 제작비를 주고 주문 제작하는 거다"라고 전했다.

제작진은 "실제로 굵직한 사기사건은 경제 위기 때마다 찾아왔다고 한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생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돈에 대한 갈망이 커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을 거다. 그 점을 사기범죄는 늘 기회로 삼아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취재를 시작하자 사설 FX렌트 거래는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이름만 다른 유사상품들이 난립하여 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일확천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심부터 하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외환 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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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및 외환딜러.png

[출처=2019 한국직업전망]

4차산업혁명의 고도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에 의해 직업 세계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유망 직업이 한순간에 소멸되거나, 미약해 보이는 직업군이 고수익 유망직종으로 급부상하기도 합니다. ‘직업전망’은 취업준비생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직장인 등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입니다.

주식, 파생상품, 채권 등 거래주문을 받아 성사시키는 증권중개인

국제 금융시장의 동향을 분석 및 파악하여 외화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하는 외환딜러

[굿잡뉴스= 강륜주 기자] 증권중개인은 증권회사에서 주식, 파생상품, 채권 등을 사거나 팔려는 법인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거래주문을 받아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을 하며 증권영업업무를 담당한다.

개인투자자 외에 금융기관,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증권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투자방법을 적절히 조언하며 자산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거래소의 시장상황을 모니터하며 투자정보를 검토하고 거래전략을 수립한다. 이외에 외환 딜러 고객에게 금융정기간행물, 주식 및 채권보고서, 기업체 출판물과 같은 투자정보를 제공하고 자문한다.

외환딜러는 국제 금융시장의 동향을 분석 및 파악하여 외화자금을 효율적으로 조달한다. 금융기관 외환딜러는 외화자금의 운용 업무를 외환 딜러 외환 딜러 담당하며 이에 따른 리스크 관리 업무도 병행한다.

해당 통화별 예금금리 등 세계 금융정보를 수집하고 국제 외환시장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여 환율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따른 손실발생을 막고 매매시점을 포착한 후 외환과 외환선물상품을 매매한다.

외환시장이 열리면 모니터에 나타나는 주요 통화의 시세를 보며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을 내며, 은행이나 기업이 최대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차액을 남겨야 한다. 그 외에 외환시장 조건과 전망에 대해 고객이나 상급 관리자에게 알리고 거래를 권고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중위연봉 6470만 원, 연봉의 상한선 높은편

워크넷 기준 증권 및 외환딜러 연봉.png

통계청 기준 증권 및 외환딜러 연봉.png

[출처=워크넷, 통계청 / 도표=강륜주 기자]

워크넷에 따른 증권 및 외환딜러의 2019년 기준 연봉은 하위(25%)연봉 5331만 원, 중위(50%)연봉 6470만 원, 상위(25%)연봉 7833만 원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나타난 증권 및 외환딜러는 워크넷의 자료와 차이가 있다. 하위(25%)연봉 5520만 원, 중위(50%)연봉 6732만 원, 상위(25%)연봉 9600만 원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증권 및 외환딜러의 중위연봉과 하위연봉의 차이는 1139만 원이다. 상위연봉과 중위연봉의 차이는 1363만 원이다. 증권 및 외환딜러의 연봉간 격차는 1000만 원이 넘으므로 연봉의 상한선이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워크넷 기준 증권 및 외환딜러의 연봉은 직업당 평균 30명의 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로, 재직자의 자기보고에 근거한 통계치이다. 재직자의 경력, 근무업체의 외환 딜러 규모 등에 따라 실제 임금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경제, 경영, 회계 등 관련학과 전공이 일반적

증권중개인, 주식시장에 대한 판단력과 분석력 필요

외환딜러, 시장상황 판단력과 금융지표 분석력 요구돼

증권 및 외환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경영, 경제, 회계, 무역, 통계학, 금융 관련 학과를 전공하여 졸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경영(MBA), 경제, 회계 분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는 추세이다.

증권중개인은 세계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경기를 예측하거나 주식, 채권, 금융상품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며 재직자의 경우 금융투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증권투자 권유자문인력,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펀드투자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외환딜러는 일반적으로 국내 은행이나 증권, 선물회사, 대기업 등의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금융실무능력을 쌓은 후 테스트를 거치거나 추천을 받아 외환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외환딜러는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흐름과 경제에 대한 지식, 외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회사에 따라서는 직원 채용 후 외환딜러를 할 만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싱가포르, 홍콩 등에 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관련학과로는 경영학과, 경제학과, 금융⋅보험학과, 국제경영학과, 국제경제학과, 마케팅학과, 정보경영학과, 금융학과, 재무금융학과, 수학과, 통계학, 금융공학과 등이 있다.

증권중개인은 국내외 변하는 경제흐름과 주식시장에 대한 판단력과 분석력, 마케팅 능력이 요구된다. 또한 수시로 변동되는 증권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며,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도 필요하다.

외환딜러 역시 경제상황 및 시장변화에 대한 감각, 분석력, 판단력과 결단력 등이 필요하다. 특히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내외 뉴스나 경제흐름, 금융지표를 발빠르게 체크하고 매매 거래를 위한 전략을 세우는 등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증권중개인, AI활용 및 비대면거래 증가로 취업자 감소 전망

외환딜러 전체 종사자 300명 이내, 향후 수요는 '중립'

연도별 증권중개업 사업체 및 종사자 현황.png

[출처=통계청 전국산업체조사/ 도표=강륜주 기자]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른 증권중개업 종사자 수는 2011년 4만 2930명, 2012년 3만 9058명, 2013년 3만 7308명, 2014년 3만 4184명, 2015년 3만 4561명, 2016년 3만 3677명, 2017년 3만 3573명이다. 사업체 수는 2011년 1784개, 2012년 1591개, 2013년 1433개, 2014년 1221개, 2015년 1182개, 2016년 1112개, 2017년 1062개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른 증권 및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다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외 금융시장 환경에 따라 증권 및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특히 많은 금융회사들이 점포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거래, 즉 비대면계좌개설을 유도하기 위해 평생 수수료를 감면하는 정책을 펼치는 등 증권중개인 취업자 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고객들의 전문지식수준이 상승하는 것도 증권중개인의 고용을 다소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AI)을 통한 시스템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보다 정교해지고 수익률이 높아진다면 증권중개인의 고용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외환딜러의 경우 금융권 각 업체의 딜링룸에 실제로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인력은 10여명 내외이고 외환거래를 할 수 있는 금융회사도 제한적이어서 향후 외환딜러의 취업자 수는 급격한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외환딜러로 종사하기 위해서는 은행 및 금융기관에서의 경력과 전문교육이 동반되어야 하므로 신규입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에서 외환딜러로 종사하는 사람은 전체 200~300명 수준으로 소수이기에 취업자 수 변동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EDAILY 정책

아침 7시. KDB산업은행 트레이딩부 외환거래팀의 박인준(32) 과장은 영등포구청 인근 자택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일과를 시작한다. 외환딜러로서는 이제 3년차. 그는 훌륭한 선배들이 즐비한 외환시장에서 딜러로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했다.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말이다.

박 과장은 “외환시장은 경험이 특히 중요한 분야입니다. 저는 트레이딩을 한 기간이 2년 반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외환시장의 혼돈과 역사를 직접 겪으셨던 기라성같은 선배들께서 보시면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한 주니어에 불과합니다”라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그는 산업은행 외환딜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노장의 관록은 없었지만, 젊음의 패기가 가득했다.

◇ 외환딜러, 막연한 동경에서 현실로..産銀 입행 ‘행운’

박 과장은 외환딜러로 일할 수 있게 된 건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인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환은행도 마찬가지겠지만, 산업은행은 국제 시장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차주로서 외환딜링의 종가 또는 국제금융의 맏형이라는 전통과 자존심이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책임감도 크지요. 이 때문에 은행에서도 내부인력을 활용하려는 애착이 더욱 클뿐더러, 육성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외환은행도 그럴 것 같은데 저희는 도제식 시스템으로 관리됩니다. 무형적인 부분이 많아 모든 딜러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은 쉐도우딜링(상상거래)만 반년 정도 시키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적은 외환 딜러 규모지만 실제 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일찍 주어집니다. 또 다른 곳에선 하우스 또는 헤드의 뷰(view)를 따라가야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는 자율성을 존중해 줍니다. 이 역시 산업은행만의 문화인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은 지점들에 비해서는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적인 역할론이나 자부심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입행한 뒤 여러 부서를 거치며 외환딜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행내 연수를 꾸준히 받았고, 시험에도 여러 차례 응시하며 학점을 모았다. 그의 노력은 2012년 2월 결실을 맺게 됐다.

박 과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홍콩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것이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꿈을 키운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홍콩에 다녀온 뒤 겉멋이 들었습니다. 국제 금융시장에 막연한 관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며 “입행 후 막연하게 동경하고 꿈꿔왔던 일을 구체화 외환 딜러 시키면서 현재 외환딜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조언으로 2007년 산업은행에 입행했다. 자본시장법 제정·시행을 앞두고 수많은 금융회사에서 인력 보충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다. 박 과장은 “아버지께서 산업은행이 대우증권과 함께 토종 인베스트 뱅킹(IB) 분야의 대표주자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산업은행 60주년 슬로건처럼 당시엔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한 금융엔진’ 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이라 취업여건이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도 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 “외환딜러, 외로운 만큼 동료愛 중요”

외환딜러는 일이 끝났다는 느낌을 가지기 힘든 직업이다. 시장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은 일정하지만, 자신의 거래와 관련된 대내외 동향을 늘상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딜이 있으면 자정까지 회사에 남거나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다. 마음 속엔 무언가 항상 남아 있는 느낌이 들며 신경을 건드린다. 올해 3월 결혼한 그는 “연애시절엔 시세를 확인하느라고 핸드폰만 쳐다보다가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라며 웃었다.

박 과장은 외환딜러가 자신감과 자존심이 특히 중요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력이 길지는 않지만 시장에서는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때론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자신감과 자존심이 필수인 분야입니다”라며 “딜이 잘 안될 때나 크게 손실을 입었을 때는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베테랑 선배들이 들으시면 웃으시겠지만, 처음 저만의 거래를 하면서 배팅 방향이 맞아 수익을 크게 냈을 때는 정말 즐거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홀로 시장과 싸우는 외로운 직업이지만, 다른 딜러들과의 교류가 무척 중요하다고 박 과장은 강조했다. 특히 동료직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박 과장은 “개별적으로 일을 하니까 단합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부서원간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를 많이 하면 고집을 덜 부려 크게 손실을 보는 경우도 줄어듭니다”며 “일을 하다보면 민감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서로 많이 의지할 수 있어 심리적인 안정에도 도움을 줍니다. 다른 하우스와는 아무리 친해도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외환 딜러 있는데, 팀원들은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박 과장이 속한 트레이딩부는 봄과 가을 항상 MT를 간다. 최근에도 청평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트레이딩 헤드를 포함해 다같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트레이더들이 가장 사랑하는 업앤 다운부터 주로 머리를 쓰는 다양한 게임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다른 하우스의 또래 딜러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그는 “월급쟁이들이니 주로 삼겹살을 먹으면서 시장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요. 각 하우스마다 알려줘도 무방한 얘기들을 공유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원화 국제화를 통해 국내 외환시장이 향후 좀 더 활성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을 하다보면 뭔가 막혀 있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원화가 국제화되고 시장 참여자가 외환 딜러 다양해지는 등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활동

여러 대의 컴퓨터 화면, 화면 속 복잡한 그래프, 손과 머리 그리고 입을 꾸준히 움직이는 모습. '딜러' 하면 생각나는 모습 중 하나이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성공했을 때의 쾌감, 그리고 높은 임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종 중 하나인 외환 딜러! 이 외환 딜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외환딜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외환과 파생상품을 가장 싼 시점에 사들여서 가장 비쌀 때 팔아 그 차액을 남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환율은 1초가 다르게 변하므로 외환 딜러 그들에겐 매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또한 엄청난 액수의 자본이 오가며 많은 이익을 창출되기에?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서?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은행에서 딜러가 일하는 곳을 '딜링룸'이라고?한다. 딜링룸은?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딜링룸 내에는?다양한 부서가 존재하며 각 부서는?특성에 맞는?고객을 상대로 판매 및 관리 업무를?수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따르면?실제 업무는?부서끼리 서로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때문에?소속 부서 일 외에도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외환 딜러가 되기 위해서는?시시각각 변하는 나라안팎의 시장상황에 민감해야 하며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만?한다. 따라서?신문이나 잡지 등을 매일 읽으며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는 조언했다.

또한?딜러 역시 영업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태도를 익혀야만 한다. 또한 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요구될 수도 있기 때문에 능숙한 영어실력이 필요하다.

외환 딜러는?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상황에서 이익을 내고 계약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힘든 직업이다. 그렇기에 엄청난 집중력, 그리고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한 최고의 외환딜러를 향한 전 북한 내과의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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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내과의사로 편안한 삶을 살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뒤 의사로 재개하기 보다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택한 탈북자가 있습니다. 남한 내 최고의 외환중개인이 될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주인공, 최승철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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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철씨가 빠르게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일 달러 당 918원. 며칠째 떨어지던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오늘은 모처럼 올랐습니다. 환율이 수시로 바뀜에 따라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행여 환율변동을 놓칠까봐 컴퓨터에서 눈을 떼기도 겁납니다.

( 기자 : 언제가 제일 바쁘신가요?) 저녁 9시부터 새벽 2시까지요. 시장에서 빅뉴스들이 나올 때, 주요지표들이 발표되거나, 연방이사회 정책발표라던지, 금리결정이라든지, 이럴 때 정말 잘하면 수익 올리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탈북자 최승철씨가 외환딜러의 매력에 이끌린 지는 올해로 5년째입니다. 외환딜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러 등을 가장 싼 시점에 사들여서 가장 비쌀 때 팔아, 그 차액을 가장 많이 남기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북한출신 외환딜러 최세웅씨에게 외환매매를 배웠던 게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최승철) 그분 바짓가랑이 붙잡고 따라다녔어요. 최고더라구요. 내가 봤을 때는. 비전도 있어보였구요. 그런데 초보투자자들이 솔직히 다 경험을 겪는 것이지만, 저도 돈을 엄청 잃었어요. 거의 전 재산을 잃다시피 했어요.

그 뒤 돈이 될 만하다 싶은 것은 다해봤습니다. 노래방, 탈북자 신문, 여행사, 전화카드 판매 등등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지난달에는 외환중개회사를 차렸습니다.

최승철:외환투자는 누가 벌면 누가 깨지고 하는 세상인데, 어차피 한국국민들이 돈벌면 좋지 않겠어요? 저는 웬만하면 한국투자자들이 손해를 안보고 특히 우리를 거쳐서 가는 투자자들에게는 투자효과까지 책임을 져주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들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도록 관심을 두고 연구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내과의사로 잘 나가던 길을 버린 최승철씨. 자유를 찾아 온 남한에서 어려웠던 시절이 하나 둘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최승철:가장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야, 너 북한에서 (멀쩡한 의사직 버리고) 왜 왔냐“는 말을 들을 때와 북한에서 온 사람은 모두 무지하다는 일반국민들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조금 불쾌하죠.

최승철씨는 남한생활에 크게 만족합니다. 지난 2003년에는 북한에서 동갑내기 약혼녀까지 온갖 고생 끝에 남한에 와서 아들을 낳아 행복하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시장경제 사회가 체질에 맞습니다.

최승철:제가 좀 자유주의 분자였어요. 조직에 구속되고 이런 것 싫어했어요. 대학 때 생활총화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어요. 남한테 구속되는 것 무척 싫어했어요. 억압된 사회가 나한테 안 맞더라구요. 대학교때 그런 충동을 많이 느꼈어요. 어머니나 누나들은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막말로 도망못치게 하려고 굉장히 마음고생 많이 했어요. 부모님한테 떠나오면서 편지 보내 “어머니가 살 나이하고 제가 살아야할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나는 이 사회에서 한 평생 외환 딜러 구속당하면서 살기 싫습니다. 나는 내 삶을 찾아서 가야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최승철씨가 요즘 화젯거리로 등장한 일이 터졌습니다. 만 달러가 들어와야 할 자기 통장에 천만 달러가 들어온 겁니다. 은행원의 실수로 자기가 받을 돈보다 천배가 많은 액수가 들어온 겁니다.

최승철: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아니, 분명 만 불만 받아야 하는데, 처음엔 외환 딜러 컴퓨터가 잘못 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꾸 봐도 천만 불이더라고요. 그래도 돈을 딱 보는 순간. 천만 불이면 굉장하지 않습니까? 일반인들이 평생 먹고 남을 돈이잖아요. 평생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이것 갖고 튀어야하나. ( 기자 : 어떻게 돌려줄 생각을 했나요?) 최승철: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은행직원이 전화했어요. 은행직원 말이 아주 처량하더라고요. 나는 은행직원이 잘 사는 줄 알았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면, 책임이 은행직원에게 . 그리고 아이들 두 명 키우는데, 자기가 잘리면 끝이라면서 봐달라고 사정사정 하시더라구요. 듣고 보니 안됐더라고요.

천만 달러를 돌려주고 그가 받은 사례는 화분 하나였습니다. 인생의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을 탈북해 불과 6년 동안에 한꺼번에 겪으면서 이제 최승철씨도 남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습니다.

최승철: 제가 한국은행에 가서 신고해봤는데 제가 개인으로 외환거래를 신고한 사람이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기적이죠. ( 기자 :틈새시장을 개발한 거네요?) 어차피 저도 횟수로 5년 투자 경험이 잇는데, 이 바닥에서는 중역 이상에 들어가거든요.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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